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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를 품고 사는 마음 25년, 출근길의 사직서버스 정류장에서 25년 동안 매일 아침 7시 40분에 버스를 기다리던 그 습관적인 발걸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희뿌연 새벽 공기를 가르며 서 있던 그 익숙한 자리. 그 세월만큼이나 수십 년간 몸담은 이 직장이 이제는 마치 등에 메인 무거운 짐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출근길 지하철 안, 멍한 눈으로 차창 밖을 보노라면 한숨이 저절로 나옵니다. 겉으로는 여전히 바쁘게 움직이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사실 제 양복 안주머니에는 늘 손때 묻은 '사직서' 한 장이 고이 접혀 있습니다.이 사직서는 결코 무책임한 '현실 도피'의 상징이 아닙니다. 오히려 숨 막히는 직장 내 갈등. 끝없이 반복되는 업무의 권태. 밀려오는 번아웃의 파고 속에서 저를 버티게 해주는 마지막 자존심입니다. 그것은 .. 2025. 10. 15.
직함 너머의 나 직함이 곧 나이던 시절제 삶의 대부분을 채웠던 명함 속 직함은 단순히 소속을 나타내는 것을 넘어, 곧 '나' 자신을 증명하는 강력한 언어였습니다. 회사에서 부여받은 자리와 역할은 저의 정체성이 되었고, 사회적 지위와 능력의 척도이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정해진 시간 버스 정류장에 서서(벌써 25년이나 된 습관이지요), 주어진 임무를 향해 달려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상이었습니다. 30대에는 승진이라는 목표를 향해 목말라하며 온 힘을 쏟았고, 그 결과로 얻어진 직함은 제 존재 가치를 확인시켜 주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었습니다. 누군가를 만나 자신을 소개할 때도, 가족과의 대화 속에서도, 심지어는 저만의 공간인 '아빠의 방'에 틀어박혀 고독과 마주할 때조차, 저는 무의식적으로 직함이 가진 의미와 .. 2025. 10. 14.
남은 시간은 보너스가 아니다 흘려보내려 했던 시간들쉰이라는 나이, 우리 사회에서는 흔히 인생의 정점을 찍고 이제는 서서히 하산하는 시점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오랜 세월 앞만 보고 달려왔으니, 50대에 접어들면 남은 삶을 그저 '덤'이나 '보너스'처럼 여기며 흘러가는 대로 살아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허락하기 쉬웠습니다. '이만하면 충분히 많은 것을 이루었으니, 이제는 더 이상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일종의 안도감처럼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안도감 뒤에는 지난 세월의 고단함에 대한 체념, 그리고 어쩌면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은근한 두려움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어딘가 모르게 삶의 활력을 잃고 무미건조하게 궤도를 도는 기관차처럼 느껴졌던 제 모습은, 바로 이러한 '보너스' .. 2025. 10. 13.
괜찮아 아빠, 자녀의 선택을 응원하는 법 나의 불안, 자녀의 통제자녀의 삶은 의심할 여지없이 제 삶의 연장선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제가 걸어온 길이 성공의 나침반이라 생각했고, 제 경험이야말로 그 어떤 시행착오도 줄여줄 지름길이라 여겼지요. 자녀들이 마주할 모든 결정 앞에서 "아빠 말대로 하면 실패는 없어"라고 자신 있게 조언하는 것이 아버지로서 당연한 의무이자 사랑의 표현이라 생각했습니다. 학업의 방향에서부터 진로 선택, 심지어는 작은 습관 하나까지도 저의 시선으로 검열하고 최적의 경로를 제시하는 데 몰두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 모든 확신에 찬 조언들 뒤에는 사실 "너의 실패를 내가 감당할 자신이 없다"는 아버지의 깊은 불안감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세상의 거친 파도를 홀로 헤쳐나갈 자녀들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이 저릿했고, 그들의 혹시.. 2025. 10. 12.
아내의 말투 너머, 진심을 보다 배경 소음이 된 아내의 잔소리결혼 후 스무 해를 훌쩍 넘긴 시간, 아내의 '잔소리'는 이제 제 일상 속에서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때로는 듣지 않아도 그 존재를 알 수 있는 배경 소음처럼 익숙한 음률이었습니다. 현관에 벗어둔 양말에 대한 "옷도 좀 제자리에 걸고!" 하는 타박, 밤늦게 들어설 때마다 "또 술이야?" 하며 터져 나오는 한숨 섞인 질책, 주말에도 무심하게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제게 던지는 퉁명스러운 "건강 검진 좀 받아봐!" 같은 말들. 저는 그 잔소리가 그저 저를 향한 간섭이나 불평으로만 들렸고, 지친 일과 후 그저 편히 쉬고 싶은 제 마음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는 귀찮은 일로만 치부하며 무심하게 흘려듣기 일쑤였습니다. 저만의 '아빠의 방'에 틀어박혀 무언가에 매몰된 채, 아내의 목소리는 제.. 2025. 10. 11.
늦깎이 기타 수업, 멈춘 시간 다시 흐르다 멈춘 일상, 작은 혁명쉰이라는 나이, 제 일상은 정해진 궤도를 도는 기관차처럼 무미건조했습니다. 출퇴근길 버스의 진동과 서류를 넘기는 손끝의 반복만이 제가 느끼는 세상의 전부였죠. 내 안의 활력은 마른 낙엽처럼 바싹 메말랐고, 마치 멈춰버린 오래된 태엽시계처럼 제 박자는 한참 전에 멎은 듯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상의 익숙한 풍경 속에 문득 기타 학원 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잊고 지냈던 젊은 날의 뜨거웠던 로망, 먼지 쌓인 추억 한 조각이 문득 빛을 발하며 제 심장을 가볍게 두드렸죠. 50대에 기타 수업을 신청하는 것. 이것은 겉으로는 소박해 보일지 몰라도, 오랫동안 길을 잃은 듯했던 제 자신을 다시 찾아가는, 작지만 용감한 혁명과도 같았습니다. 회사 업무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그리고 복잡다.. 2025. 10. 10.
마흔, 그림자 너머 나를 찾다 사십 대의 그림자, 오십 대의 발자국마흔의 문턱을 넘어 쉰이라는 나이에 접어들면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불안과 우울이 일상에 드리운 그림자처럼 저를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 감정은 마치 잔잔했던 호수 위로 조용히 번져오는 물결 같아서, 시작점을 알 수 없는 채로 마음을 잠식해 들어왔습니다. 문득 찾아든 이러한 내면의 파동은 단순히 특정 사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거실 소파에 앉아 습관처럼 뉴스를 보는데, 젊은 세대의 창업 성공 스토리에 눈길이 머물다가도 불현듯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가' 하는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곧 정년이다', '자녀들의 등록금과 결혼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같은 현실적인 걱정들이 스모그처럼 시야를 가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 2025. 10. 9.
가면 뒤의 고독, 아빠의 방에 대하여 가장이라는 성벽, 그 안의 외로운 방가장이라는 자리는 겉으로는 단단하고 견고한 성벽 같습니다. 굳건히 가족을 지탱하고, 어떤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의 상징이죠. 그러나 그 성벽 안쪽에는 누구에게도 쉽사리 열어 보이지 못하는, 외로움이 가득 찬 고립된 방이 존재합니다.직장에서 은퇴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우기 시작하고, 집에서는 자녀들이 각자의 삶을 찾아 독립하거나, 아내와 자녀들이 그들만의 견고한 세계를 만들어갈 때, 50대 남성은 마치 망망대해에 홀로 남겨진 듯한 낯선 공허함을 느낍니다. "괜찮다", "아무렇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이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정말 외로움이 사무칠 때조차 그 감정을 표현할 방법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왠지 모를 나약함으로 비칠까 봐, 혹은.. 2025. 10. 8.
가면 너머의 나, 가장으로 산 반세기 가면의 무게, 잊힌 나의 이름50대의 삶을 돌아보면, 마치 나 자신을 지우고 '가장'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쓴 채 반세기를 보낸 것 같습니다. 희미해진 청춘의 꿈 대신, 어깨에 놓인 묵직한 책임감이 제 정체성이었습니다.매일 아침 7시 40분, 버스 정류장에서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25년을 한결같이 기다리던 시간은, 단순히 출근길이 아니라 가족의 기대를 짊어진 가장의 숙명이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 26살의 젊은 나이에 회사에 입사해, 30대에는 오직 승진만이 삶의 목표였던 때도 있었습니다. 젊은 날의 헌신은 당연한 미덕이었고, 그것만이 미덕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문득 고요히 나를 마주하는 순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텅 빈 공허함과 마주합니다. 돌이켜보면, 가족을 위해 스스로를 기꺼이 .. 2025. 10. 7.
오래된 노래가 건네는 위로, 50대의 불안을 어루만지다 익숙한 멜로디, 낯선 위로50대가 된 지금, 퇴근 후 저만의 작은 공간에서 오래된 노래를 들을 때가 있습니다. 먼지 쌓인 LP판이나 낡은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1980년대와 90년대의 멜로디는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치 시간의 터널을 통과해, 가장 순수했던 청춘의 감성을 소환하는 주문이자, 그 시대가 품고 있던 집단적인 불안과 희망의 생생한 기록입니다. 이제는 빛바랜 사진처럼 아득하지만, 그 선율은 여전히 제 마음을 붙잡습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가 등을 다독이는 듯, 익숙하면서도 낯선 위로를 건네옵니다.청춘의 낭만 불안 50대의 현실 불안우리가 젊었던 시절의 노래들은 종종 격렬한 사회 비판이나 뜨거운 사랑을 노래했지만, 그 밑바닥에는 '무언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이 아련하게 깔.. 2025.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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