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전체 글158 계획 없는 길 위에서 나를 만나다 50대 여행, 비우는 여정50대가 되어 떠나는 여행은 20대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른 지도를 펼쳐줍니다. 젊은 시절의 여행이 '무엇을 정복하고 성취할까'에 대한 뜨거운 도전이었다면, 지금의 여행은 '정복을 넘어 비움으로', 즉 무엇을 비워내고 받아들일까에 대한 고요한 탐색입니다. 오랫동안 익숙했던 일상이라는 촘촘한 직조에서 잠시 실 한 가닥을 풀어내듯 벗어나, 낯선 곳의 풍경 속에 나를 온전히 던져 넣는 행위는 삶의 의미를 재발견하는 소중한 의식이 됩니다. 굳건히 쌓아 올렸던 정체성 대신, 여행지에서 비로소 가장 자유롭고 '나다운' 나와 마주하게 되는 것이죠.완벽한 계획 너머 찾아온 삶의 빈틈우리는 삶에서든, 여행에서든 완벽한 '계획'과 '통제'를 세우려 필사적으로 애씁니다. 학창 시절부터 이어져 온 성과.. 2025. 10. 3. 톱밥 냄새나는 토요일 먼지 덮인 공구함작년 가을, 나는 베란다 한쪽에 쌓인 먼지 덮인 공구함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들이 대학 입학으로 집을 떠난 지 석 달쯤 지났을 때였다. 퇴근하면 텅 빈 거실이 유난히 넓어 보였다. 아내는 새로 시작한 요가 수업에 빠져 있었고, 나는... 나는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스마트폰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다가, 유튜브로 목공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20대 때 잠깐 배웠던 거였다. 당시엔 '나중에 여유 생기면 다시 해야지' 했는데, 그 '나중'이 정말로 왔다. 근데 막상 오니까 별로 반갑지 않더라.이틀 걸린 30분짜리 작품첫 작품(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하지만)은 작은 나무 받침대였다. 유튜브 영상에선 30분이면 만든다고 했는데, 나는 이틀 걸렸다. 톱질할 때 선이 자꾸 삐뚤어졌다. 화가 나서.. 2025. 10. 2. 주문진에서 찾은 30년 전 우리 삼십 년 만의 재회, 낯선 익숙함"야, 여기 맞아? 전혀 기억이 안 나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성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문진항 입구는 30년 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민수는 스마트폰을 꺼내 지도를 확인했고, 나는 그저 바다 냄새부터 맡았다. 짭조름한 바다 내음만은 그때 그대로였다. 50대 중반, 우리 셋은 20대 초반에 왔던 주문진을 다시 찾았다. 당시에는 배낭 메고 무작정 왔었는데, 이번에는 예약한 숙소에 차까지 몰고 왔다. 성호는 "이제 우리도 편하게 다니는 나이지 뭐" 하며 웃었지만, 사실 민박집 2층도 부담스러운 나이가 됐다.어시장에서 시작된 옛날 얘기짐을 풀고 가장 먼저 간 곳은 주문진항 어시장이었다. 30년 전 그 작은 횟집은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그냥 적당히 사람이 많은 곳으로 .. 2025. 10. 2. 카톡 하나 보내는 게 이렇게 어렵다 읽음 표시가 답이라고?지난주 아내한테 카톡을 보냈다. "오늘 저녁 뭐 먹을까?"답이 없었다. 10분, 20분, 30분. 기다리다가 결국 전화를 걸었다. "왜 답 안 해?" 아내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1 떠 있잖아. 읽었다고." 나는 몰랐다. 읽음 표시가 답이 될 수 있다는 걸. 예전엔 달랐다. 전화를 걸면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 톤으로 바로 알 수 있었다. 오늘 기분이 좋은지, 피곤한지, 지금 통화해도 되는지.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숨소리, 말끝의 떨림, 뒤에서 들리는 소음까지도 상대의 상황을 알려주는 신호였다.하지만 이제는 숫자 하나로 모든 걸 판단해야 한다. '1'은 읽었다는 뜻인데, 그게 긍정인지 부정인지, 바빠서 나중에 답하려는 건지, 아니면 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건지 알 수.. 2025. 9. 30. 50대 우정, 침묵과 균열 사이 세월이 만든 편안함과 묘한 자유50대에 접어들면 사람과의 만남은 저절로 줄어듭니다. 하는 일과 가족이 삶의 한가운데가 되면서, 젊은 시절 '같이'였던 친구들은 어느새 '따로'가 되어 각자의 궤도를 돕니다. 하지만 바로 이 시기, 오랜 친구의 존재가 가장 절실해집니다. 새로운 관계는 조심스럽고 에너지가 듭니다. 반면 세월을 함께 통과한 친구는 설명이 필요 없는 존재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통하고, 표정만으로 서로의 안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편안함'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너무 오래 알았기에 상대를 업데이트하지 않고, 20년 전 그 사람으로만 기억하는 것입니다. 한때 열정적이던 친구가 지금은 냉소적으로 변했을 수도 있고, 순진했던 친구가 세상을 꿰뚫는 눈을 갖게 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우.. 2025. 9. 29. 체벌 받던 세대가 읽은 인성을 가르치는 학교 "왜 사과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라는 조카의 말며칠 전 조카가 학교에서 친구와 다툰 일로 걱정이 많다고 했다. "왜 제가 먼저 사과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한테도 이유가 있단 말이에요"라며 따지듯 말하는 모습을 보니 갑자기 내가 학교 다닐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1980년대 중반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는 달랐다. 친구와 다투면 담임선생님이 불러서 "사과하고 화해해라"라고 하시면 그게 끝이었다. "왜요?"라고 묻는 아이는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도 없었고, 어른 말씀에 따르면 되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그런 방식으로는 납득하지 않는다. 왜 사과해야 하는지, 상대방 입장은 어떤지 스스로 이해하고 싶어 한다. 이런 변화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판단하기 어려워하던 중에 안양옥 교수의 인성.. 2025. 9. 28.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느끼는 가장 먼 거리 익숙함 속 부부의 진심수십 년을 함께한 부부의 관계는 세상 어떤 것보다 견고하고 편안하다. 서로의 존재는 마치 공기처럼 자연스러워, 눈에 보이지 않아도 항상 곁에 있는 듯한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우리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하지만 바로 그 익숙함과 편안함 속에는, 말로 확인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작은 감정들과 가장 먼 거리가 숨어 있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그 익숙함과 편안함 속에서, 부부 대화가 점점 어렵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젊은 시절처럼 서로에게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마음을 탐색하지 않게 되면서, 우리는 문득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가장 먼 거리를 느끼게 된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려던 열정은 점차 줄어들고, 말 한마디가 주는 의미와 온기를 충분히.. 2025. 9. 27. 내가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하다 삶의 행복 발자취 책이 일깨운 행복의 파동데이비드 R. 해밀턴 박사님의 이 책, "내가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하다"는 마치 잘 익은 와인처럼, 50대 중반의 삶이 주는 깊이와 어우러져 더욱 진한 여운을 남겼습니다. 이정국 선생님의 섬세한 번역은 박사님의 통찰을 우리네 삶의 언어로 생생하게 전하며, 저로 하여금 오랜 시간 잊고 지냈던 기억의 문을 열게 했습니다. 책이 말하는, 우리의 감정과 태도가 물결처럼 주변으로 퍼져나가 관계의 바다를 만드는 놀라운 메커니즘은, 마치 거울처럼 제 지난 세월을 비춰주었습니다. 삶의 굽이굽이를 돌아 여기까지 온 지금, 저는 문득 마음속 깊이 되묻습니다. '나는 타인의 행복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나의 행복은 또 어떤 잔물결을 만들어냈을까?' 책에서 강조하는 '관계심리학'은 팍팍한 일상 속에서 .. 2025. 9. 26.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 청춘의 서정과 영혼의 풍경 노스탤지어, 제목의 울림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는 제목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마음속에는 단순한 서평의 기대를 넘어선 깊은 울림이 일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세월의 저편에서 아득히 밀려오는 아련한 노스탤지어 같기도 했고, 도심의 소용돌이 속에서 잊고 지냈던 내면의 풍경을 다시금 불러내는 주문 같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단순한 글의 묶음이 아니라 삶의 한 조각을 건네는 따스한 손길처럼 다가왔습니다.광화문, 시대를 읽고 삶을 거닐다이 책은 광화문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해부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시간을 초월하여 광화문에 켜켜이 쌓인 역사와 문화, 그리고 그 위를 스쳐 간 무수한 인연들의 숨결을 서정적인 필치로 '읽어내고',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단함과 희망 속을 묵묵.. 2025. 9. 25. 오래가는 소통을 읽으며 되돌아본 나의 관계들 관계를 돌아보게 한 한 권의 책바쁘고 복잡한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만남을 이어가지만, 때로는 그 관계의 깊이와 지속성에 대한 갈증을 느끼곤 합니다.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 아니라, '오래가는 소통'을 통해 오랜 시간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적 관계를 꿈꿀 때, 이경진 작가님의 책은 우리에게 진정성 있는 질문과 깊이 있는 통찰을 건네줍니다. 이 책은 표면적인 대화 기술이나 설득의 요령을 넘어, 어떻게 하면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오래도록 단단한 유대를 지켜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저는 문득 저의 과거를 되짚어보게 됩니다. 어릴 적 형제자매와의 사소한 다툼, 학창 시절 친구와의 오해, 직장에서의 보이지 않는 벽, 그리고 가장 가까우면.. 2025. 9. 24. 이전 1 2 3 4 5 6 7 8 ··· 16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