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처럼 내려, 시간처럼 지나갔다.

겨울이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제일 먼저 눈이다. 그 눈이 많이 내리면 좋았다.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다. 이제 겨울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20대 그 시절, 눈이 내리던 날 느끼는 감정은 특별히 없었다. 상징적인 의미를 두었던 기억도 없었다. 지금 내 기억 속에서 찾으려 해도 뚜렷한 추억도 없었다. 눈이 오면 친구들과 어울려서 술을 마셨던 기억만 있었다. 그저 어묵국물과 홍합탕에 쓴 소주 한 잔에 웃고 떠들던 생각만 있었다. 그 속에서 눈은 펑펑 많이도 내렸다.
내가 본 그 눈은 나에게도 분명 감정이 있었다. 다만 나 자신이 그 감정을 온전히 밖으로 드러내지 못할 뿐이다.
30대에 내리는 눈은, 20대의 눈과는 달리 풍부한 감정이 생겼다. 이제 그 감정의 표현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쁘고 행복하고 즐겁고 그리고 슬프기도 했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보니, 아이들은 변하는 계절의 모습을 보며 뛰어놀고 있었다. 특히 겨울의 눈은 우리 아이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다. 그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애들은 신기했다. 그것이 기쁘고 행복한 놀이가 되었다. 그 모습을 볼 때 느끼는 감정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겨울에 눈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특별히 생각나는 것은 없었다. 어릴 적 기억을 돌이켜 보니, 집 앞 논에 얼음이 얼어 친구들과 썰매를 타고 놀던 때가 떠올랐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볼 수가 없었다. 그 어린 시절, 눈은 기다리던 환상이었다. 눈을 밟고 지나면 새겨지는 발자국이 선명하게 새겨졌다. 눈을 모아 둥글게 만들기도 했고 그 만든 눈이 눈사람도 되었다.

40대에 보았던 눈은 쓸쓸함으로 시작해 무관심으로 바뀌어 무상함으로 변해 버렸다. 20대처럼 눈이 와도 친구들과 만나는 일도 없고, 술 한잔 하는 것도 없었다. 그냥 눈이 오는 날이었다. 불편하고 지저분한 그런 눈이 되었다.
하늘을 바라보았다. 눈이 올 날씨는 아니다. 해가 중천에 높게 떠 있었다. 내리는 햇살이 얼굴을 밝게 비쳐 주었다.
그런 40대에는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 눈이 오든 내리든 나와는 무관한 그냥 일기예보일 뿐이다. 가족들에게 모든 것이 소요되는 시간이었다. 그 세월은 의미는 충분하지만 나에게는 무상함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 40대는 나 자신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고민을 안겨준 세월이었다. 또한 내 인생에 커다란 전환점이 된 것이 아니었나 싶었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방향도 정해 주었던 시기였다.
지금 다시 돌이켜보면 참 힘이 들었다. 그때는 누구를 생각하고 배려할 여유가 없었다. 이대로 살아야 할지 아니면 포기를 해야 할지 선택만 해야 하는 나만의 시절이 되고 말았다.
그렇게 40대를 훌쩍 지나서 50대가 되었다. 50 초반에는 눈이 오는 날이면 마음에 조금씩 여유라는 것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걱정도 있었다. 그 걱정은 성인이 되어 버린 자식이었다. 눈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자식들이 아니었다.
눈은 보는 것으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새하얀 색이어서 좋았다. 내려 쌓이거나 녹아 얼음이 되는 것은 싫었다.
걱정 걱정 하면서 내 50 초반은 서서히 아니 빠르게 지나버렸다. 눈처럼 맑고 깨끗한 것이 있었던가 싶었다. 사람들의 마음도 눈처럼 청량함을 지니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눈이 녹아서 물이 되면 그 속에는 이물질도 간혹 있었다.
그렇게 나의 50 중반은 넘어갔다. 이 겨울은 조용했다가 시끄러워졌다. 감기조심, 길조심, 차조심 뉴스가 되어 여기저기 인사처럼 반복되어 나왔다.
날씨는 추워도 이 겨울이 지나가기 전에 다시 눈을 보고 싶었다. 많이도 말고 머리에 살짝 묻어날 만큼, 너무 적게도 말고 적당히 발자국만 남길 정도로만 주말에 내려준다면 좋을 것 같다.
얼마 남지 않은 겨울은 지나가지만 또다시 온다. 그때가 되면 나는 지금에 보았던 눈과 다음 겨울에 눈이 어떻게 달라질지, 아니면 단지 내 마음만 변한 것인지 궁금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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