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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있는 재미있는 그런 이야기

꿈에서 자꾸 입대를 다시 하라고 한다.

by 2011년 2011. 9. 6.

어젯밤 꿈속에서 입영통지서가 집으로 왔다. 군대에 다시 입대하라고 한다. 난 깜짝 놀라서 내가 왜 군 복무를 다시 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유는 전역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고 나면 바뀐 규정 때문에 또다시 군 복무를 해야 한다고 한다. 전역한 부대로 복귀하든지 아니면 집 근처에 가까운 부대로 병장을 달고 입대를 하면 된다고 한다. 난 할 수 없이 부대로 복귀하고 다시 군 생활을 하면서 제대가 얼마나 남았을까 손꼽아 기다리면서 아주 열심히 군 생활을 했다. 물론 꿈이지만 했다. 그렇게 제대 날짜가 다가오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그렇게 꿈속에서 군 생활은 계속 되풀이되고 악몽은 아니지만, 되풀이되는 꿈이 날 조금씩 괴롭히고 있었다. 꿈은 계속되고 제대를 일주일 남기고 있을 때 난 잠에서 깨어났다. 꼭 현실과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앉아서 옆에 누워있는 아내를 보니 꿈이 이였구나 하고 긴 한숨을 쉬며 안도하는 마음으로 다시 누웠다. 아내가 잠에서 깨어나 아침 준비를 하고 우리는 아침을 먹었다. 오늘은 주말이다. 텔레비전을 켜고 볼만한 프로가 있는지 여러 채널을 돌려 보았지만 별로 재미있는 것은 없고 자꾸 꿈속에서 보았던 군 생활이 생각이나 군에서 복무했던 부대가 그리웠다. 그때 군 복무를 한 전우들과 군 생활이 점점 기억 속에 떠올라 잠시 그들과 함께했던 추억을 그려 보았다. 지금 그들은 뭘 할까 궁금도 하다. 특히 군 동기들이 보고 싶다. 난 방으로 가서 아주 오래된 내 군 생활의 작은 앨범 하나를 꺼내 보았다. 앨범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사진 속에 모습과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추억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보고 싶다. 나의 전우들을 생각해 보니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한 20년이 넘었으니, 그들은 나라는 존재를 기억이나 할지 모르겠다. 나 또한 그들이 모습과 이름들이 아른아른해진다. 전역을 얼마 남지 않는 그때의 기억들이 머릿속 한편으로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제대로 얼마 남기지 않는 시기에 부대의 동기와 후임들은 나에게 추억록이라는 것을 만들어 주겠다고 한다. 나는 필요 없다고 사양을 했다. 전역을 일주일 남기고, 난 만년 휴가를 갔다. 그리고 온 다음 날이었다. 그들은 나 몰래 열심히 하고 싶은 말과 그동안 하지 못한 것과 표현하지 못한 얘기들을 여러 날을 통해서 시간이 나는 대로 그렇게 적어 내려갔다. 나에 관한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소탕하게 말이다. 앨범을 열어보니 사진 말고 다른 것이 있었다. 전역을 앞둔 시점에 그들이 나에게 한 자 한 자 정성껏 적어 주었던 나에 추억록을 보았다. 한 장 한 장 읽어 가고 있는데 읽으면서 누가 누구지 잘 모르겠다. 그냥 읽으면서 기억을 더듬어 보련다.

예비군 아저씨
인생은 짧고 군 생활은 길기만 합니다. 그 군 생활 건강하게 마치시고 전역하는 박 병장님께 진심으로 축하의 말을 전합니다. 저희 3대대에서 유난히도 꼬인 군번 중의 한 분이라 생각되지만, 지 복인 걸 어떡하겠습니다. 논산에서 줄 잘못 쓴 죄밖에 더 있겠습니까. 박 병장의 전역에 유독 아쉬움이 생기는 건, 아마 그 수많은 짬밥 차이가 있어도 그렇게 어렵지 않고 친근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번 종로에서의 펑크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휴가 나가면 꼭 한번 모시겠습니다. 물 좋은 데서 말입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게 지내십시오.
※ 박 병장님은 제가 상병 칠 호봉 때 붙어 봐 왔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현역보다는 예비군 분위기에 더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진짜 예비군 마크를 달게 되신 걸 축하합니다. 
- L. S. O. -

끝없는 기다림을 가지고도 견뎌야만 하는 것은 서글픈 그리움을 가지고도 살아야만 하는 것은 소망 때문이요. 소망을 위해서이다.
※ 수고 많았다. 나는 해냈다. 지금부터 인생은 시작이다. 열심히 살아라.
- Y. J. G. - 
 
정말로 가시나이까? 알 수 없지 그건 내가 누구냐고? 달콤이 변해가는 군대에 홀로 핀 들꽃과 같이 가난한 시인인가 그대
그러나 떠나야 하니 그래야 내가 가지 그리우면 한 번씩 읽어봐 이곳 가평 떠나야지 잘살고 가시리 가시리 가시리이꼬 앨범 달랑 들고 가시나이까 헹가래 바래시나이까 침상 세면장 그리고 소금보다 짜던 땀은 잊으려나이까 야상 몇 호 입나이까 전투화 몇 문입니까?  전투화 모두 주고 가나이까? 어둠 속의 가늘란 분 빛 그것이 초라하다고 너는 가지만 남은 우린 있잖아
그냥 있잖아. 그냥 당신 추억과 함께
- K. O. M.-

우선 진심으로 전역을 축하합니다.
같은 내무반에서 20개월 가까이 병영 생활하면서 잔정도 많이 들었는데 아쉽습니다. 후임병들에게 편안하고 장난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내면에는 조용한 그 무언가가 숨어 있을 것 같습니다. 전역하신 후 예전에 그 女 에게 미안하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박 병장님 말년에 많이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밖에 나가서 매사에 열심히 생활하는 훌륭한 모습 보여 주십시오.
- J. O. N -

박 병장님 
전 박 병장님을 잘 모릅니다. 저완 대화도 잘 나누지 않으셨지만, 사회에 나가셨어 하시는 일 잘되시고 건강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박 병장님 앞날에 축복과 행복이 함께하시기를
- P. H. S -

영원히 썩지 않는 우리들의 곰팡이 박 병장님의 전역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함께했던 시간은 영원히 잊지 못한 추억으로 간직하고 이 만남이 지속하기를 바랍니다. 사회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모든 것이 시작과 끝이 되풀이되는 삶 속에서 지금은 헤어지지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이마 줄입니다.
※ 축 전역 그렇게 오랜 시간을 잘 견뎌내고 건강한 모습으로 전역하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만남은 헤어짐을 동반하지만,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 C. D. H.-

아들이 드리는 글 (전역을 축하합니다.)
박 병장님하고 아들 아닌 후견인을 맺은 게 엊그제 같은 일인데 벌써 제대를 한다고 벅 석을 일주일부터 한다고 난리 치고 그러는 모습을 보면 재미있습니다. 제가 1월 7일 전입을 와서 후견인관계를 맺은 지 10개월째 되었습니다. 후견인 관계는 맺었으나! 아들을 한번 내지는 가끔만 신경을 쓰던 박 병장이 그리고 저 때문에 대장님한테 혼이 나셨던 7월 한때 몸이 아파 입원하고 있는데 대장님이 저한테 물어보았다. 박 병장님이 병문 와보기도 했느냐고 해서 왔다고 굳이 제가 우겨서 했는데 나중에 오지 않은 것 때문에 그 벌로써 제초 작업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아들한테 10개월 동안 옷 다려주는 것도 2번 그 외는 한 번도 안 다려주던 박 병장님이지만 박 병장님 원망하지 않고 좋고 좋은 관계로 후견인 관계를 맺은 이 아들 저는 박 병장님을 전역해도 잊지 못합니다. 잘 가십시오.
※ 키 작은 power 멋쟁이 박 병장님
- L. K. O -

저와 만난 지도 벌써 1년 5개월정도 시간으로 따지면 많은 시간이었지만 둘이서 그렇게 진지한 이야기는 많이 못 한 것 같다. 들기에는 고집이 세다고 들었지만 내가 알기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밖에 나가서라도 열심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충실히 하는 사람이 되기를 빌면.
- K. S. R.-

박 병장님 전역을 축하합니다.
다른 할 말은 업소 30개월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또 친했던 고참을 더 보내고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일, 이등병 시절엔 한 사람 나갈 때마다. 좋았는데 지금은 좋은 생각보다는 서운한 느낌이 드는군요. 어찌 하여튼 군에 생활을 토대로 사회에서도 성공하시길 바랍니다. 휴가 나갈 때 꼭 연락 드리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술 한잔하는 것도 괜찮겠죠! 만약 대전에 올 기회가 있거나 어디로 떠나고 싶을 때 연락 주십시오. 문전 박대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시 한번 그동안의 생활에 감사드립니다.
※ 곰팽이여 잘 가시라.
- O. S. O. -

박 병장 형님께
형님을 잘 알지 못하는 처지에서 이런 글을 쓰게 되니 조금은 어색한 기분이 듭니다. 제가 느끼기에 형은 항상 밝게 생활하시는 것 같기에 제대를 한 후 사회에 진출하게 되더라도 항상 밝게 생활해 나가시니라 믿습니다.정말 어려움 입장에 서게 되더라도 항상 웃으며 여유롭게 넘길 수 있는 형님이 돼주시길 바랍니다. 여러 사람에게 능력을 인정받고, 형이 생각하신 목표를 향해 열심히 생활하셔서 이제 막 군 생활을 시작하는 저에게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성실히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사회에 나가셔서도 저에게 해주신 것처럼 따뜻하게 형처럼 감싸주고, 생각해 주신다면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좋은 인상을 심어 주실 수 있는 형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 항상 성실하게 살아가시길 빌겠습니다.
 - K. J. O. - 

박 병장 형에게 이 글을 바친다.
먼저 전역을 아주아주 축하하고 전입해 와서 아무것도 모르는 저에게 친형같이 군 생활에 대해서 가르쳐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사회에 나가시더라도 군에서의 생활처럼 열심히 살아가길 바랍니다. 우리 귀여운 박 병장 보내는 마음 쓰리지만 어떡하랴, 만인이 원하는 것을 그동안 군을 위해 고군분투한 것 고맙다. 그 뒤를 이어서 열심히 삽질하마 부디 잘살아야 한다.
- J. K. H. -

박 병장에게
박 병장 그동안 군 생활 하느라 고생 많았다. 나간다고 껄떡 껄떡거리지 말고 잘해 통신병으로서 욕먹을 때는 정말 싫었는데 그러면서 제는 언제 제대 하나 했는데 막상 전역한다고 하니 서운하기도 하고 아쉬움도 많이 남는 것 같고 노래 가사처럼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먼저 나간다는 것뿐이지 나가면 다시 만나게 될 겁니다. 건강하고 잘살게나 박 병장! 다시 만나세 언제고 눈물 흘려야 할 땐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메마른 사회에서 그럴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길~
- K. J. H -

먼저 전역을 누구보다도 더 축하하며 그동안 고생한 노고를 진심으로 고개 숙여 조아립니다.
고급(000)인력으로서 제 기능도 발휘하지 못했지만, 항상 앞서 가는 선견지명으로 모든 검열과 훈련에 대비해 무엇보다 편한 병영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항상 곁에 있으면서 언제니 제 곁에 아니 제가 박 병장님 곁에 있으면서 풀리기도 수억 이제 떠나면 누가 날 풀리게 해주죠. 걱정하지 마십쇼, 짬밥이 수억 그릇이니 나가시더라도 뜻하시는 일 다 이루시고 무엇보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조그만 여백은 언제나 形式에 불과합니다. 우리 만나는 날 못다 한 얘기 다 하기로 해요.
- K. O. C. -

박 병장에게
30개월 군 생활 하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건강하시고 하고자 하는 일이 모두 잘 되길 빕니다. 다음에 만나면 술 한잔 진하게 사주십시오.
- K. O. -

박 병장님께
먼저 전역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30개월의 길고도 짧은 시간을 이제 다 채우고 군대라는 테두리에서 떠나 사회라는 곳으로 날개를 펴고 비상하는 우리의 HOPE 떠나더라도 3대대의 자존심을 지켜 짜장면 배달이나 신문 배달 같은 직업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지 마시고 또 혹시 군에서의 전공을 살린답시고 전화가설 Man으로 전봇대에 매달리지 마십시오. 열심히 공부하여 원하시는 직장에 들어가셨어 3대대의 곰팽이 명성을 한껏 날려 후배 전우들의 우상으로 영원히 남으소서!
※ 곰팽이! 곰팽이! 곰팽이! 3대대의 소리 박돌신! 박돌신! 통신병의 소리 꼭 전화하세요. 거짓말이야!
- K. M. H. -

박 병장님
박 병장! 안녕히 가시지나 그동안 잘 지냈는데 떠난다니 아쉽군.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보려나? 부디 밖에 나가서도 밝은 모습 잊지 말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잘사시게 진심으로 전역을 축하하네. 메롱!!!!!!!!
※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야 디야
- K. J. S.-


그렇게 한장 한장 보고 있는데 아주아주 큰 종이에 빽빽이 가득 적혀 있는 글이 보였다. 웃긴 얘기들이 적혀 있었다.

라면 동우회 신조 (우리의 결의)

우리는 S사와 N사에 충성을 다하는
육군의 라면 광이다.

하 나  해불고 우리는 라면을 사랑하며
                   라면공장 건설의 역군이 된다.
 둘    해불  우리는 실전과 같은 훈련으로
                   야간에 라면 먹는다.
 셋    해불고  우리는 법규를 준수하고
                   라면 먹을 때만 지키지 않는다.
 넷    해불고  우리는 명예와 신의를 지키며
                   자는 애들 다 깨워서 같이 먹는다.
다 섯 해불고  우리는 라면에 살고 라면에 죽는다.

이렇게 우리 부대원들은 라면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이런 신조어를 읊어 쓰니 말이다. 군대에서 먹는 라면은 정말로 맛있다. 지금 집에서 다시 끓여 먹어도 그때 몰래 전우와 먹었던 라면 맛은 다시 나지 않는다. 

박형 니는 아니, 아니가 먼지 나도 몰라 할 말이 없어 
곰형 니는 알아요. 알아요가 먼지 나도 몰러 할 말이 없어
팽형 니는 알고 계십니까? 알고 계십니까? 가 먼지 나도 모르겠어 니마음 데로 생각혀

곰은 역시 곰 팽이는 역시 팽이 곰팽이는 무엇일까? 나도 모르지!

당신은 아는가? 내가 이등병 때 화장실에서 내 동기와 후레쉬 베라를 몰래 먹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아는가? 완장 차고 돌았을 때의 당신 모습을...
당신은 아는가? 내가 이등병 때 전 병장과 공병대 창고에서 짱박혀 잤던 사실을...

I LOVE YOU (영어) Ben Seni Seviyorum! (터키어) Ich liebe Dich (독어) 我 愛 汝 (한문)
박 병장님께 주 마담이 드릴 말씀은 단 한마디 당신을 사랑합니다.!

안녕하세요!
11중대 차기 왕고 상병 손입니다. 30개월 동안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막둥이부터 전역하는 그날까지 구슬땀을 4L 정도 아니 더많이 흘린 박 병장님께...
장하다 박 병장! 훌륭하다. 박 병장!

나가서 뵙겠습니다. OOl시 지부장으로 추대합니다. 전 부회장 김 일병은 총무 휴가나 가서 뵙겠습니다.
OO리 오두막 커피숍으로 오십시오.

그대 아는가? 화장실 뒤에서 과자 먹다 들킨 일 또 아는가? 진지공사 때 대팔이와 다투다가 고참한테 매우 맞은 거!
알 수 없지! 나가는 날 헹가래 치다가 팽개칠지. 그야 나도 모르지 내가 시킨 게 아닐걸. 그것도 모르지 내가 시킬지
아무튼 모르는 세상 모질게 살아라. 그것도 알 수 없는 일이자 또 알 것!

연락하기 바란다. 곰팽이협회 곰팽이 신조
 첫째 나갔으면 죽고 만다. 둘째 또 모르지, 안 죽고 살아 있을지 셋째 나는 안다. 나는 역시 곰팽이여!

그렇게도 기다리던 전역의 날이 오긴 왔군요.
항상 곁에 붙어 다니며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는데
재미있었던 14개월이었어요. 어찌 흰 여백으로 그동안의 얘기를 쓸 수 있겠어요.
거두절미하고 나가면 잘 사시고 건강하서요.
열악한 환경에서 ㅌ ㅗ ㅇ ㅇ ㅅ ㅣ ㄴ(통신병)일 보느라 수고했어요. 나가면 찾아갈게요.

그 똥 누가 먹는지 알어! 알 수 없지 곰팽이가 먹을지 똥강아지 똥 속에 피어난 파란 곰팽이 열 받으면 빨개질지 누가 알갔어 나도 모르지! 달콤이는 알 거야

작은 거인 통신병 무관심으로 대하던 후견인 관계를 맺은 박 병장님 전역을 축하합니다.
제2의 인생길에서 새로운 성공을 하시길 바랍니다.

나가서 인간에 꼭 필요한 소금이 되소서 그대는 잘 해내리라 믿습니다. 그대와 같이 보낸 18개월 즐거웠습니다.
다시는 재롱을 못 본다는 것이 아쉽군요. 나중에 시간 나면 놀러 오소서

열심히 살어라 박씨! 생명이 있어 살아가는 게 아닌 살아가므로 생명을 얻는 人이 되어라!

니는 아느뇨! 곰팽이가 잔 밥을 먹고 돌았는지 또 모르지! 미나리 먹고 미쳤는지 그야 모르지 니마음대로 생각혀. 그려 나 죽일 놈여 

일, 이등병 때 하루가 멀다고 찾아오던 그 애(女) 이제 어디서 무엇할까? 그야 아무도 모르지 창발이와 내통할지
난 알 수 없지 이렇게 곰팽이는 사라지다. 내가 누구냐고 창발이~

쫄다구때 당신은 기억하느뇨 고참먼저 부식 먹었다고 신 나게 지랄(?)하던 때 곰팽이는 파시 통통 안 먹나.

평화의 기도 주여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열심히 살아라!


앨범과 같이 담아 있는 나의 추억의 노트를 다 읽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나에게 그 시절에 말하고 싶었던 것은 더 있지 않았나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보고 또 보고 그리움을 잊으려 한다. 또한, 그들을 생각하면서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지만 나와 함께했던 전우들은 언제나 내 삶을 통해 그리워하고 떠올리면서 영원히 기억할 수밖에 없는 추억이다. 보고 싶다. 나의 전우여 생각해라 그 시절 우리는 용감하고 훌륭한 군인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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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자꾸 입대를 다시 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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